2023년 시작한 첫 드라마. 내 자신도 믿기진 않지만, 나는 이제껏 송혜교의 작품을 순풍 산부인과 빼고 본 적이 없었다… (믿기 어려워 방금도 주욱 그녀의 27년 간 필모그래피를 흝어보았지만, 역시나 순풍 산부인과 빼고는 단 한 작품도 보지 않았다. 송혜교가 온전히 주연으로 나온 작품은 더 글로리가 처음인 셈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나는 송혜교의 명성(?)만 익히 들어왔을 뿐, 딱히 인상깊은 배우였다는 생각을 일체 한 적 없이 살아왔는데, 이번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송혜교는 영혼이 말라죽어 일상생활에서의 웃음조차 놓아버린 학폭 피해자 문동은을 너무나 담담히, 그리고 품위있게 잘 살려내었다. 몰랐는데, 송혜교의 목소리와 어투가 참 품위있더라. 임지연 등의 주조연급 배우들도 물론 연기를 너무나 잘했지만, 송혜교가 중심을 잡고 극을 이끌어 이렇게 단단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 같다. 박연진, 이사라, 최혜정, 전재준 그리고 손명오를 중심으로 한 학폭 가해자들 및 빌런들의 발악이 문동은의 세련되고 절제된 태도와 극명한 대조를 이뤄 이 작품 속에서의 각기 다른 인물들의 삶의 태도와 근본적인 인간성 차이를 참 잘 표현했다.

 

더 글로리가 넷플릭스에 공개되고,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순순히 이 드라마를 시작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홍대병(...)은 둘째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어둡기만 한 이야기를 엄마와 단 둘이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나니, 김은숙 작가의 통통 튀는 언어유희들과 개성있는 조연 배우들의 열연에 (“명랑한 년!”) 저번 금요일 이른 오후에 시청을 시작, 엄마와 그 자리에서 8화까지 다 보고 말아버렸다 -_-

 

아마도 초등학생 때 처음 “입체적 캐릭터”라는 것을 배웠는데, 그 당시엔 와닿지 않았으나 요새 들어 드라마 속 입체적 캐릭터를 찾는데 재미가 들렸다. “더 글로리” 내 가장 두드러지는 입체적 캐릭터는 아마도 엄혜란 배우의 맞고 살아도 명랑한 강현남이지 않을까 싶은데, 파트2에서는 동은이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 복수만을 위한 단조롭고 단편적인 모습 이 외, 지금껏 언뜻언뜻 비춰진 평범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어 입체적 캐릭터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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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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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난노"는 태국 드라마로, 오늘 점심 먹으면서 밥 반찬으로 보다가 무릎을 탁 치며 "요즘 전세계를 강타한 오징어 게임의 순화 버젼 같다!" 라고 느껴 대세에 편승하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주인공 난노는 매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학교의, 언제나 학기 중 급 전학오는 전학생으로 등장하는데,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각 학교 저 밑바닥에 팽배한 불행의 불씨에 기름을 부으는 역할을 한다. 직접적으로 사건을 일으킨다기보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옆에서 캐치하고 부채질 함으로써 학생들이 알아서 서로 속이고 죽이고 악한 일을 행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극 중 나이는 16살이라는데, 분명히 거짓말이고 이름도, 나이도, 그 뭣도 불명일 것 같은 캐릭터이다. 찾아봤더니 난노의 정체를 사탄의 딸, 불교에서의 악신, 뭐 그런 걸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출처: 넷플릭스 공홈

 

이 드라마의 특징은 매회마다 감독이 바뀌는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것인데, 덕분에 35분~45분 사이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 케미 티비 사랑과 전쟁과 더불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우리집 밥 반찬으로 등극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19금임에도 불구하고 밥 반찬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매회 에피소드가 엽기적이고, 살인 강간은 물론이요 온갖 범죄는 다 저질러지지만 오징어 게임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피는 튀기지만 직접적인 묘사가 없고 내용이 폭력적이고 잔인하지만 대부분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연출 위주이다.

 

이 드라마는 내 생애 첫 태국 드라마인데, 베프 무리 중 태국인 R군은 내가 드디어 난노를 본다고 하니 얼쑤 얼쑤 춤을 췄더랬다. (R군은 태국 영화, 드라마, 광고, 뮤직 비디오 등의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태국의 자랑스런 시민으로, 대학원 시절 내내 나에게 태국 미디어를 노출시키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성공한 적이 없었다.) 라오스 여행 갔을 때도 티비에는 태국 방송만 나오던데, 저 동네에서는 태국 방송/연예계가 꽉 잡고 힘 좀 쓰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각설하고, 아무튼 지간에 심심하거나 or 밥 반찬으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추천 에피소드를 꼽자면:

(옴니버스라 순서는 상관없음 / 대신 시즌 1, 2 순서는 따르는 것을 추천)

 

  • 시즌 1 - 4화: 디노의 비밀 (자본주의 끝판왕, 돈 많은 막장 태국 청소년들 묘사, 허세 허풍 거짓말 못멈추다 어떻게 나락까지 갈 수 있는지 묘사)
  • 시즌 1 - 6화, 7화: 증오의 벽 (인간의 서투른 이기심과 질투심을 세심하게 묘사)
  • 시즌 1 - 9화: 함정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간이 서바이벌을 위해서라면 어떻게까지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지 보여줌)
  • 시즌 1 - 2화는 그냥 그랬는데 극 중 "난노"의 정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화이기 떄문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 시즌 2 - 1화: 여자 남자의 생물학적 상황이 바뀌어 남자가 여자와 불장난 하다 임신해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되는지 역지사지 상황을 보여줌.

 

이 드라마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는 태국 사회와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태국 내 사회적인 문제를 주제로 다루거나, 좀 더 보편적인 인간의 악(惡)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전자는 우리 문화와 비교하며 보기 흥미롭고, 후자는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시즌 1의 3화 "영재"편과 "톱 10"편은 태국의 극단적인 학력 및 외모지상주의를 잘 나타낸다 (그리고 이건 태국 친구들에게 동의받은 생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태국은 각 학년, 학교, 심지어 자선단체(!)까지 남녀 미인 대회를 여는 것이 어색하지 않는 문화라 한다. 자선단체 미인대회는 내 태국인 친구피셜이니 너무 강조하지 않기로 하고, 각 학교마다 미인 대회를 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컬쳐라고. 꾸미는거 좋아하고 인싸끼가 있는 태국/베트남계 친구가 있는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그 쪽 문화권 사람들이 SNS 쇼맨쉽(?)에 좀 진심인 것 같긴 하다.

 

👇👇👇 말 나온 김에.. 아래 글은 내가 2016년 방콕 여행 중 초딩 꼬꼬마가 미인대회에서 입상하고 사돈의 8촌까지 모여서 파티하는 것을 목격한 글이다 ㅋㅋ (엽기 셀카 주의, 스압 주의)

 

2016.01.27 - [여행 이야기/2015 태국 & 라오스] - * 선상디너파티로 마무리 치차 아마따야꾼지은 방콕에서의 1일째! (또 스압주의)

 

* 선상디너파티로 마무리 지은 방콕에서의 1일째! (또 스압주의)

전날 피피섬에서의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발마사지를 받은 뒤, 우리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짐을 챙기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이른 시간부터 벌써 복작복작거리는

catherine1ee.tistory.com

 

물론 내 동남아 친구들은 동남아 전체 인구의 아주 작은 샘플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자격은 없겠지만, 일단 내 친구들만 봐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요즘엔 틱톡에 목메고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하는데... 내가 한창 동남아 친구들과 어울리던 5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을 항상 화보같이 찍고, 올리고, 라이크 200 넘게 받는 것이 당연시 되는 듯 한 그런 분위기였다.. 나도 페북 꽤 열심히 했는데 나는 쨉이 안된.. ㅋㅋㅋ 싱가폴 애들과 비교했을 때, 태국 애들이 더 심했던 기억이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점, 또는 태국 문화를 모르는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실 점은 작중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들 이름이 죄다 밤, 한, 퐁, 딴.. ㅋㅋ 그런데 또 선생님이 이들을 부를 때는 더 긴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유는 전자 이름들이 "닉네임"이기 때문이다. 나도 태국 친구에게서 배우게 된 사실인데, 태국은 우리나라의 아명처럼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친구들이 닉네임을 부르는 것이 흔하다고 한다. 작 중 "난노"를 연기한 태국 아이돌 출신 치차 아마따야꾼도 예명은 헬로 키티를 따서 "키티"라고 한다. 내 태국인 친구들도 모두 멀쩡한 태국 이름이 있는데 닉네임은 토이 스토리의 버즈, 뭐 그런 것들이다. 예명을 짓는 것에 대해 큰 의미는 두지 않는 듯.. ㅋㅋ

 

아쉬운 점은.. 나는 식도락 덕후라 생활 속 다양한 태국 음식이 많이 많이 화면에 잡혔으면 했는데, 그런건 없었다..

 

아무튼지간에 혹여나 태국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 계시면, 또 엽기적이고 잔인한 걸 그닥 마다하지 않는 심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 들여다보길 추천드립니다. 태국 내 사회적인 문제가 증폭된 채로 묘사되기 때문에 과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은 하는 것 같음. 오징어 게임을 완주하신 용자분이라면, 분명 편히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태국 현 대중 문화 및 사회에 해박한 분들이 계신다면 제가 생각하는게 어느 정도 타당한 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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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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