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병이 있다.

 

유명한거 안보고, 안읽고, 안듣고 싶은 속칭 홍대병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대부 시리즈도 여태 안봄)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그냥 워낙 고전이다 보니 죽기 전에 언젠가는 보것지~~ 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달음을 얻으면서 지금 당장, 올해가 가기 전에 보고/읽고/듣고 싶은 고전 영화 n선, 책 n권 등의 리스트를 쭉 정리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었다. 요나스 요한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솔직히 이 책을 다 읽고, 좀 부끄러웠다.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저우언라이한테 꽂혀서 중국 대학원에 진학하고, 영국에서는 근대사를 전공하며 대한제국과 러일전쟁에 대해 석사 논문을 쓴 내가.. 이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세계사 이야기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니!!

 

나는 스웨덴어를 못하기도 하거니와 스웨덴과는 문화적으로 내적 친밀감이 없는지라 ㅋㅋ 책 초반이 조금 지루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도저히 입에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꾹 참고 장을 하나 하나 넘기다 보면, 곧바로 깔깔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

 

이 책은 1905년에 태어나 작중 2005년까지의 100세 노인의 대한 서사와 100년 간 세계를 바꾼 정치인들의 대한 풍자 스토리다. 스탈린은 물론, 쑹메이린, 마오쩌둥, 심지어 어린 김정일까지 나온다 ㅋㅋㅋㅋ

 

주인공인 알란 엠마누엘 칼손은 골때리는 백 살 노인인데, 이 양반이 얼마나 골때리는 양반이냐면 백 살 생일 때 양로원에서 창문을 넘어 도망치고, 깡패의 돈가방(아마도 마약 관련)을 훔쳐 개조된 버스를 몰고 코끼리와 도망친다. 물론, 그 와중에 여러 동료들도 만나고, 사람도 두어 명 죽인다 -_-

 

격동의 20세기 초반, 알란 칼손은 1905년 스웨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다. 본인보다 더 또라이 같은 아버지가 처음에는 볼쉐빅, 그 다음에는 아니 글쎄 볼쉐빅의 숙적 니콜라이 2세(ㅋㅋ 아나스타샤 아빠 맞다)한테 붙어 러시아에서 개죽음 당하고, 본인보다 더 하드코어한 어머니도 결국 죽게 된다. 조실부모한 알란은 일련의 불가항력 사건들에 휘말려 (정확히는 폭발물을 만들고 처음으로 사람을 죽임) 정신병자 취급 당하고 정신병동에 끌려가 거세당한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잘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알란의 수난사. 아니, 수난사라고 해야할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이 책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이다. 솔직히 알란의 요양원 탈출과 깡패 돈 들고 튀는 여정까지는 좀 많이 지루하다. 과거는 알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스페인 내전의 프랑코 장군,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 밑에서 핵무기 만드는 과정 까지도 살짝 지루한 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갑분 쑹메이링이 등장하면서 부터 엄청난 재미 가속도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장제스 와이프 그 쑹메이링 맞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쑹메이링? 쑹메이링? 0_0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모택동도 나오고, 김정일도 나오고 하는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2013년에 동명의 영화도 나왔는데, 아쉽게도 아시아는 안돌고 스탈린이랑 트루먼 등의 러시아/미국 정치인들만 나온다고 한다. 이 책의 백미는 갑자기 뜬금없이 등장하는 중국 정치인들이랑 국공내전이랑 울보 김정일인데 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너무 너무 아쉽다만 한번 기비러쵄스 할 예정이다.

 

영화 티져. 알란이 만든 폭발물로 터지는 다리이다 ㅋㅋㅋ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 블랙 유머에 20세기를 쥐고 흔든 세계사 속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 팩션 코미디까지! 이런 내용은 웬만한 세계사, 군사, 정치사 지식 바탕이 없고서야 나올 수가 없을텐데.. 하며 작가의 이력을 봤더니 그럼 그렇지, 기자 출신이다. 그것도 기자 때려치고 자신만의 100명 직원 미디어 기업을 이룩한 성공한 사업가.

 

워커홀릭에 건강이 나빠져 20년 간 운영하던 회사를 매각하고 스위스로 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집필하기 시작했단다.

 

회사를 살펴보니 아직도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북유럽 지역에서 인정받는 언론사인듯 하고, 직원은 현재 링크드인 기준으로 220명이다:

 

 

OTW - Nordens mest prisade contentbyrå

OTW skapar innehåll som engagerar din publik. Vi vet att de berättelser som berör är de som har förmågan att skapa lojalitet och bygga varumärken – på riktigt.

www.otw.se

 

개인적으로 국제관계/정치외교/정치학/역사 등의 전공을 꿈꾸고 있는 중, 고등학생 문과 꿈나무들에게 강추하는 책이다. 혹은 냉전을 포함한 세계 이데올로기 전쟁사에 관심 있는 이과 친구들에게까지!! 나 고등학교 때 초판이 찍힌 책인데, 이걸 도대체 나는 왜 직장인 되고나서 지금 읽었나요..

 

아참, 번역이 참 맛깔나게 잘 되어있기도 하다.

 

한번 사는 인생, 알란 칼손처럼, 또 요나스 요한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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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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