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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글보다 요리였어

두번째 사진 출처: 조선일보

 

제목이 확 땡겨서 구매까지 했다. "역시 구글보다 요리였어~"라고 말하는 듯한 구어체가 웬지 정감가고 심지 굳어보였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2-300쪽 남짓인데다 일기같이 쓰여있어 부담없이 휙휙 읽을 수 있다.

 

아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자인 안주원 작가가 진짜 신의 직장이라는 샌프란시스코 구글 본사(..)를 때려치고 요리를 시작하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한국 지사 근무에다 2년 반 남짓만 구글에 있었던지라 아주 살짝 김이 빠졌었다 ㅋㅋ; 내 경험상, 1. 신의 직장이던 신 할아버지 직장이던 한국 회사는 한국 회사고 (본문에도 구글 코리아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듣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2. "구글"과 "코넬"이 그렇게 책 전체에 강조를 하며 힘 줄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_-; 구글이랑 코넬이 대단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책 전체에 "내가 구글을 다니는데.." "내가 구글을 다녔는데.." "그래도 내가 코넬 출신인데.." 라는 이야기기 좀 필요 이상으로 나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이 책의 주제가 바로 그것이긴 하다 -_-;)

 

다만 한편으로는,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정말 솔직하게, 감추고 싶었을 본인의 내면까지 용기있게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유복하지만은 않은 집안의 아이비리그를 다니는 장녀로 대학을 졸업하고 본의 아니게 한국에 돌아와 "내가 이런데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괴롭던 백수생활, 그리고 남들이 모두 와~~ 하는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해 어깨 힘이 잔뜩 들어갔던 부분들. 게다가 요리를 시작하고서 스타쥬를 시작한 샌프란시스코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 SPQR에 똑같이 인턴으로 들어온 유명 셰프 딸에게 느끼는 경쟁심리까지, 스스로 치부라고 생각해 감추고 싶었을 수 있는 부분들을 정말 솔직하고 용기있게 나눴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가 파워 P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정말 별 계획 없이 구글을 그만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름대로 많이 알아보고, 여러 의견도 들어보고 했다지만 회사를 그만 두고나서야 각국의 여행과 요리학교 견학을 시작했던 부분이 나에게는 조금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출장도 많았다던데, 구글이 죽을만큼 싫었던게 아니었다면 좀 더 차근차근 회사 다니면서, 휴가 조금씩 써가면서 학교 합격 통지서 다 받고 그만둬도 되었던 것 아닌가..; 왜 굳이 공백기를 만들어서 사서 고생하나, 싶었던 부분들이 개인적으로 조금 의아했다.

 

또 이 책이 작가의 취준생 부분부터 정식당에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을 읽기 쉽게 담았기에, 구글을 그만 두고 각국 여행을 하며 느낀 점을 아주 짧게 묘사한 부분이라던지, SPQR에서 작가에게 인턴쉽이 끝나고도 같이 일하자고 잡았는데 사실 나는 한식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며 나가게 되는 부분 등이 많이 뜬금없다 느껴졌다. 이 후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며 한식에 대한 열정이 좀 더 다뤄지나, 그 부분을 조금 더 일찍, 더 깊이 있게 다뤘다면 책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것 같다.

 

정식당 취업 이후의 행보를 찾아보니 작가는 이태원 한국 술집 안씨 막걸리를 거쳐 현재 요레카라는 식품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듯 하다: @yoreka_kr

 

안씨 막걸리는 구글 리뷰를 보니 맛은 모르겠지만 딱 북미, 유럽 등지에서 엄청 잘 먹힐 모던 한식 컨셉인 것 같은데, 캐나다에도 이런 실험적이지만 획기적인 한식당 컨셉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신의 직장 구글을 박차고 나가게끔 만든, 요리에 대한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정을 정말이지 온 맘 다해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을 덮고 남은 것은 작가의 "내가 그래도 구글을 다녔는데.." "내가 코넬을 나왔는데.." 등의 푸념 뿐이었다;;;;..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솔직히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랑 좀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만 (구글 그만두고 요리학교 들어가는 과정 빼고), 작가 본인은 싫어한다는 엘리트주의 의식이 이 책 전반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에 100% 완벽한 일들만 있을 것이며, 시도때도 바뀌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데 어찌 구글 대신 요리를 선택한 작가가 요식업에 맨땅헤딩하며 마냥 행복하고 기쁘기만 했을까. 그런 부분에 있어 작가가 본인의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을 용기있게 대중에 공유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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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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