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패밀리 닥터 구할 때 조언 및 팁
생활정보/꿀팁 & 내돈내산 2021. 12. 29. 02:07 |우리 부모님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극혐하시는데, 나는 지금까지 큰 불만 없이 만족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부모님 입장도 이해를 못하는 건 또 아님. 이 글에서 캐나다 의료 시스템의 (장)단점 분석과 이 넓디 넓은 땅덩이의 의료 인프라 빈부격차를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캐나다는 영국, 그리고 일본과 흡사하게, 개개인 혹은 가정 당 General Practioner(이하 GP)인 일반 가정의를 둔다. 이런 분들을 패밀리 닥터(이하 팸닥)라고 부르는데, 전문의(Specialist / 스페셜리스트)를 보려면 꼭 팸닥 추천서를 받아 전문의 클리닉에 다시 예약을 잡고 방문해야 한다. 일반 가정의쌤들은 내 몸 상태와 히스토리를 가장 잘 아는 분들임에 동시에, 게이트 키퍼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것이다 ㅋㅋ 캐나다 의료보험이 커버되는 신분이라면 죽을 병 수술까지 모두 무료이나, 치과, 안과, 많은 부분의 처방약 등이 전국민 의료보험에 포함이 안된다.
우리집은 2000년도 초반 캐나다 나나이모로 이주해서 그 때 지인 분의 팸닥을 추천받아 그 분 밑으로 들어갔는데, 비동양인 의사분이셨다. 여기서 쓸데없어 보이는 인종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팸닥의 문화적 배경과 인종적인 신체적 특징(?) 등이 팸닥 만족도와 향후 전문의 리퍼럴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집의 캐나다 첫 팸닥은 나나이모의 비동양인 의사 분이셨는데, 이 한 마디만으로도 부모님을 지금까지도 치떨게 하는 포인트 두 가지를 뽑아낼 수 있다:
1. 넓디 넓은 땅덩이의 의료 인프라 빈부격차: 토론토같은 대도시가 좋은 이유는 병원 인프라가 끝내주기 때문이다. 토론토 대학 부속 연구 병원만 해도 내가 알기로 다운타운에만 대학교 도보 15분 거리 내 University Avenue를 쭉 따라 남쪽으로 7개인가 9개 있으며, 그 중 하나인 Toronto General Hospital은 2021년 기준 전세계 종합병원 4위에 랭크되었다 (출처: Newsweek). 같은 출처의 캐나다 최고 병원들 순위만 보아도, 1위부터 4위가 모두 토론토 병원이며, 10위권 내 병원 중 6곳이 모두 토론토에 위치해있다.
이런 상황에, 무려 천조국을 바로 밑 이웃으로 두고 있는 캐나다는 역사적으로 두뇌유출(brain drain)이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의치대 간 내 선배들 중 거의 80% 이상이 지금 미국에서 의사하고 있으면 말 다했다 (법대는 조금 덜한 것 같지만 법대도 마찬가지.) 개발자 두뇌유출은 더 심각해서 ㅋㅋㅋㅋ 내 컴싸 친구들 지금 다 샌프란에 있는데 지난 3년 여간 다시 좀 토론토로 돌아오는 추세다. 요새 샌프란 다들 못살겠다더라..
아무튼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로 활동하려면 각 나라 혹은 주(province/state)의 면허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캐나다 의치법대 인재의 미국 이동은 개발자들이 컴터 하나 들고 비자 스폰서 받은 다음 일하러 갔다 오고,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미국 정착을 목표로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캐나다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한들 이미 sunk cost가 너무 크고, 또 미국에서 돈을 훨씬 더 많이 벌기 때문에 돌아올 이유도 딱히 없다 ㅋㅋ
아무튼지간에, 이런 이유로 전세계 어디나 그렇겠지만 캐나다 시골은 의사가 부족하고, 대도시와의 의료 인프라 빈부격차가 심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선진국이기 때문에 시골도 열악하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언제든 원하면 전문의를 저렴한 가격에 맘껏 볼 수 있던 한국을 생각한다면, 캐나다의 시골은 한국 이민자들에게 특히나 가혹하다. 게다가 캐나다는 땅덩이가 을매나 큰지.. ㅡ_ㅡ
부모님은 나나이모의 팸닥이 아예 소용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우리집 경험상, 나나이모 팸닥들은 전문의 추천서를 웬만해서는 절대 안써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추천서 써주는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했는데, 나중에 내가 내 가정의 오피스 매니저랑 얘기한 바로는 자기들끼리도 레퍼럴 레퓨테이션이라는게 없진 않다고 한다. 여기서는 전문의 보기가 과장 좀 보태서 하늘에 별 따는 수준이다 보니, 시덥잖은 레퍼럴 써주는 팸닥 클리닉은 전문의 클리닉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전문의 보고 싶은 순간마다 거의 매번 거절을 당하셨으며, 설상가상으로 추천서를 받는다 한들, 나나이모 혹은 그 근처에 원하는 전문의가 없어 빅토리아나 밴쿠버로 나가야 하는 상황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건 동물병원도 마찬가지다...)
2. 한국과의 문화 차이와 기대 수준: 캐나다는 다민종이 모여 사는 국가인만큼 여러 가치관이 공존한다. 물론 이 나라를 하드캐리하는 주류 가치관이라는게 있긴 한데, 그게 한국 이민자들과 충돌할 때가 심심찮게 있다. 내가 팸닥의 인종과 문화적 배경이 팸닥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동양인이며 그들이 아주 자주 상대하는 비동양인들과의 신체적 특징이 매우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 학생 때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건강이 최악으로 치달아 전문의를 본 적이 있음.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 백인이셨음. 내가 이러 이러한 증상이 있다 하니, 그건 내가 너무 말라서(..)라고 하심. 그 때 당시 나는 오히려 내 아픔의 부작용으로 살이 찌는 것을 의심했을 정도로 인생 최고 몸무게였는데, 그 분은 내가 내 나이 또래 같은 신장 평균 여성보다 너무 말라서.. 몸이 안좋을거라고 말씀하심. 아무리 내가 이건 평소보다 더 살이 찐거다라고 말을 해도 더 5kg 정도 더 찌우라는 말만 하심 ㅜㅜ 동양인 체격에, 당시 절대 마른 몸은 아니었음... 그냥 기준이 너무 다름. 지금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그 분의 진단이 전체적으로 맞긴 맞았는데, 여전히 내가 그 때 당시 살이 더 쪄야 했다는건 동의하지 못하겠음 ㅋㅋ 현재 그 몸무게에서 약 -10kg의 몸무게로 잘 먹고 잘 사는 중.
- 워크인 백인 GP가 피뽑으려는데 뻥안치고 "ㅎr.. 아시안 여자애들 팔 너무 가늘어서 힘들어.." 라고 대놓고 한숨쉼 ㅋㅋㅋㅋㅋㅋㅋㅋ 인종차별이 아니라 진짜 힘들어서 푸념하는게 느껴졌음. 심지어 파이널 이그젬 기간이었는데 내 팔에 주사바늘 푹푹 찌르고 멍투성이 만들어 놓고도 결국 피 못뽑아서 랩으로 보냄. 캐나다 토론토 피뽑는 랩은 보통 필리피노분들이 하드캐리하시는데, 이분들 피 짱 잘 뽑으심. 지금 생각해보면 왜 GP가 굳이 직접 간호사 시키지 않고 내 피를 뽑으려 했는지 이해가 안감;;
- 식생활. 이게 꽤 크다. 뭘 먹는지 설명을 하면, 문화 차이가 너무 클 경우 못알아 듣는 경우가 많음. 이건 한류가 전무했던 20년 전 나나이모에서는 특히 더 그랬음. 내가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해 부연설명을 블라 블라 해야하고, 또 쌤이 100%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서 서로 혼란스럽다.
- 인종별 지병 문제. 내가 알기로 인종마다 특징적인 지병이 있을 수 있는데, 일례로 흑인들은 당뇨 발병 위험이 높다고 한다. 또 치과의사 친구 말로는, 뼈가 너무 튼튼해서 발치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동양인들도 연령별, 출신 국가의 백신 정책 등의 이유로 동일 지병을 비동양인들보다 더 많은 비율로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인종별 발병 위험이 높은 지병에 관해서는 동일 인종 선생님이 더 지식이 깊은 경우가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팸닥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공부를 엄청 많이 하시고 똑똑하신 분들이시지만, "한국계 여성"인 나의 문화적 배경이 전혀 없으신 분들이라면 내 신체에 대한 이해를 교과서의 데이터로만 해석하지 않으실까 하는 우려가 없진 않다.
- 그리고 기대수준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한국은 과잉진료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캐나다 의료가 세금으로 커버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예방의학에 더 힘을 쏟고, 생명에 위협이 없다 싶으면 거의 방치 수준..ㅋㅋㅋ 결국에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예전에 피어싱 때문에 귀가 찢어진 적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보시고 아이고.. 연고 잘 바르고 앞으로 피어싱 하지 말아라. 하심 ㅋㅋㅋㅋㅋㅋㅋ 꼬매자 뭐 그런거 없음. 팔로업 잡아준다고 하셨는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 대신 이 사람 진짜 죽겠다 싶으면 처치가 아주 훌륭하다카더라. 내가 캐나다 시골 카페에서 알바했을 때, 거기 단골 할아버지가 인공 심장을 이식하신 분이셨는데, 사경을 헤메다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수술 다 되어 있고 돈 한 푼 안내셨다고.
- 이런 경우, 바로 바로 전문의를 볼 수 있는 한국 의료 시스템에 익숙한 분들은 가슴을 치며 답답해할 수 밖에 없다. 또 회색지대는, 암수술 같이 1분 1초가 금보다 귀한 시간 싸움에 들어가는 경우, 초기라면 지금 당장 죽지 않으니 3개월 이상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을 수도 있음 ㅡ_ㅡ
아니 그럼 이 나라 의료 시스템의 장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 내 몸은 내가 챙기게 된다: ㅋㅋㅋㅋㅋㅋ 이거 레알. 아프지 않으려면 내가 내 몸을 잘 알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면 바로 팸닥에게 달려간다.
- 무료..다 ㅋㅋ (아니 근데 내 세금..)
- 내 몸에 대한 이해를 웬만큼 하게 되고, 나만의 예방의학 시스템을 구축하면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적극적으로 매년 피검사, 보험 커버되는 백신 모조리 다 맞기 등 ㅋㅋ..)
그런데 이건 잘 안아픈 젊은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고, 부모님 연배 한인분들은 위에 언급한 단점들을 이유로 살기가 더 팍팍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한국말이 유창한 한인 의사분들은 거의 유니콘 수준이다 보니 더 그렇다. (그리고 이건 진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인 사회가 너무 좁아서 ㅠㅠ 환자 정보가 아무리 기밀이라한들, 한 다리 건너면 다 사적으로 아는 관계일 확률이 높아, 나는 한인분을 팸닥으로 맞기 좀 꺼려진다;)
그럼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남나? 팸닥을 선택할 때 조언
- 우선 나는, 너무 일차원적인 말이지만 ㅠㅠ 가능만 하다면 병원 인프라가 크게, 잘 구축되어 있는 곳에 거주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여기서 갑을관계를 따질 순 없겠지만, 시골로 들어갈 수록 의사 수가 부족해서 팸닥들이 전문의 리퍼럴을 써주기 꺼려하고, 말 그대로 의사가 갑이다 ㅠㅠ 나나이모와 토론토를 모두 거주한 내 경험에 따르면, 나나이모와 비교했을 때 토론토가 팸닥들의 환자 유치 경쟁이 더 세서 그런지(?) 더 친절하고, 레퍼럴도 잘 써준다. 만일 영어가 불편한 분들이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대도시에서 한국어 되는 팸닥을 찾는게 더 쉽다.
- 팸닥을 선택할 때 있어서, 프론트 데스크의 서비스가 얼마나 기민한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부분은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특히나 코로나 시국인 요즘엔 더욱 그렇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환자는 어떤 경우에 있어도 의사에게 직접 연락하지 못한다. 긴급 상황이 생기거나 어떻게든 곧 팸닥과 연결을 해야할 때, 프론트 데스크가 신속하고 친절하게 처리해주면 그것만큼 안심되는게 없다. 내 클리닉에 경우 프론트 직원들이 너무 일처리를 잘해서 (심지어 오후 11시에 이메일 보내도 5분 안에 답장옴;) 팸닥보다 오히려 프론트 직원들에 대한 만족도가 더 크고, 팸닥 클리닉을 결정한 이유에 있어 그 분들이 매우 컸다. 내 팸닥 내가 본다는데 답장도 안해주고 예약도 안잡아주면 홧병난다.
- 나는 내 또래 한인 여성 팸닥분 밑에 있다가 그 분이 이사가셔서 현재는 중국계 팸닥 밑에 있는데, 만족한다. 레퍼럴 써달라는데로 써주고 (제일 중요), 일단 같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식생활이나 기타 여러가지 기대치 등에 있어서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음.
캐나다에서 전문의 보는 팁:
마지막으로 캐나다에서 전문의를 보고싶을 시, 많은 분들께서 팸닥이 보내주는 전문의에게로만 갈 수 있는걸로 아시는데 내 경험상 그건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팸닥이 아는(?) 혹은 친분이 있는 전문의에게 더 빨리 보내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만약 팸닥을 통했음에도 전문의와의 예약이 세월아 네월아라면, 일단 팸닥에게 레퍼럴을 받고 직접 전문의 클리닉으로 전화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토론토 시내 내과 전문의를 봐야 한다면, 토론토 시내 내과 전문의 클리닉에 내가 직접 전화를 다 돌리면서 지금 내가 팸닥 레퍼럴을 가지고 있다, 언제 가장 빨리 방문할 수 있냐, 혹시나 취소하는 환자가 생기면 바로 나에게 연락달라.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전화를 돌려야 전문의 예약까지 수 개월 기다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팁으로는 토론토 내 전문의 클리닉은 보통 예약 잡는 경쟁이 더 세기 때문에, 외곽 지역 클리닉에 전화를 돌리면 더 예약을 빨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캐나다에서 살아가려면 젊었을 때부터 내 몸을 잘 이해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잘 해서 스스로 튼튼해져야만 한다 ㅋㅋ 그리고 가능하다면, 삶의 질을 위해서 의사와 클리닉이 많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시골로 갈 수록 내게 맞는 팸닥 찾기도 어려워질 뿐더러 전문의 보기도 힘겨워지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프론트도, 쌤들도 불친절했다 (잊지 말자.. 팸닥 클리닉도 담당 환자들 수를 채워야 돌아간다. 의사 수가 적고 환자가 많은 시골은 그래서 의사들이 초초초 초사이언갑인 것이다..)
본문은 나의 10년 토론토, 10년 나나이모 생활을 바탕으로 한 치의 과장 없이 쓰여졌으며, 캐나다의 다른 대도시 vs. 시골은 나도 모르겠으나 상황은 다 비슷하리라 짐작한다 ㅋㅋ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하루 빨리 부모님을 의료 시스템이 잘 구축되고 팸닥쌤들이 더욱 친절한 토론토로 모셔오는 것이 목표이다. 블로그에 캐나다 뉴커머분들 유입이 좀 되는 것 같은데 그 분들께 특별히 더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들 건강하시길 소원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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