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사람들을 취직시켰나 시리즈:

👉 1탄: 잡마켓에 대한 캐나다 사회/문화의 대략적인 설명

👉 2탄: 내 개인적인 경험담 (특히나 나와 같은 비상경 문과 학생들에게 바치는 글)

👉 3탄: 실전 전 마음가짐, 링크드인 가입

👉 4탄: 콜드메일/커피챗 

 

1탄에서 내가 어떻게 기업의 "내정자"가 되어야 하는지로 끝을 맺었다.

 

월요일이고.. 주식 시장도 안좋아서 기분 꿀꿀한데 다시 한번 나를 써주시는 회사의 소중함을 리마인드 하기 위해 타자를 두드린다 ㅡ.,ㅡ 개미의 삶이란.. ㅎr........ , ,

 

아직 이 시리즈의 전글들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나는 어떻게 사람들을 취직시켰나 - 캐나다에서 맨땅헤딩 취업기를 시작하기 앞서

요즘 인생 노잼 시기를 겪고 있다. 이런 시기가 거의 없었기에 내 3X 평생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아 보고자 각잡고 한번 글을 써내려가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바랄

catherine1ee.tistory.com

 

 

 

나는 어떻게 사람들을 취직시켰나 - 캐나다에서 맨땅헤딩 취업하기 1탄

나는 어떻게 사람들을 취직시켰나 시리즈: 👉 1탄: 잡마켓에 대한 캐나다 사회/문화의 대략적인 설명 👉 2탄: 내 개인적인 경험담 (특히나 나와 같은 비상경 문과 학생들에게 바치는 글) 👉 3탄:

catherine1ee.tistory.com

 

1. 나의 개인적인 경험담

 

캐나다 밖 대학원 진학

 

나는 대학을 토론토에서 나오고, 대학원을 각각 중국의 북경과 영국의 런던에서 마쳤다. 각 1년 짜리 복수 학위 프로그램이었음.

 

나는 이민와서 줄곧 캐나다가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나나이모에 정착했으며 -_- 토론토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내 전공인 국제관계학에서의 캐나다 위치가 별 재미 없었다. 국제정치, 세계사는 늘 강대국들이 주인공이기에..

 

나는 선진국인 캐나다와 이곳에서의 생활이 불만스럽지 않았지만, 언젠가 세계를 움직이는 국가에서 살아보고, 또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은 진짜로 언제나 내 관심 밖이었으며, 대학원도 미국 대학원은 단 한 곳도 쓰지 않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International Relations (국제관계학, 또는 때때로 정치외교학..?) 그리고 심리학 복수 전공 시절 당시, 나는 주은래에게 꽂혔었다. 모택동 밑에 있던 중국 공산당 2인자 그 주은래 맞다 ㅡ.,ㅡㅋㅋㅋㅋㅋ (노파심에 분명히 해두자면 나는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 속 개미이고 싶다

 

아 아무튼 지간에..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던 때는 또 지금과 다르게 중국이 막 G2로 급부상하며 멀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패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던, 뭔가 그런게 어렴풋이 느껴지던 그런 때였다. 그래.. 그 때 박근혜 전대통령이 시진핑 옆에 서네 마네 했던 바로 그 때.

 

진짜 각설하고, 나는 원래 대학원을 중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어찌 어찌 해서 북경대와 런던정치경제대학의 복수 학위 프로그램에 진학했다.

 

그 때 당시 생각에는.. 대학원까지 중국, 영국에서 나왔는데, 내가 다시 돌아가랴? 하는 생각이 컸다. 나는 캐나다로 돌아올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캐나다로 돌아옴 ㅠㅠ

 

대학원 졸업 후, 어찌 어찌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나는 캐나다로 돌아오게 되었다 ㅡ.,ㅡㅋㅋ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 정도로 끝내겠음.

 

그 때 진짜 아쉬웠던 점이, 네트워킹이었다.

 

아, 캐나다에서 취준생 될 줄 알았으면 걍 토론토에서 대학원 가는건데, 싶었다.

 

영국에서 캐나다로 막 돌아왔을 당시, 뭔가 끈 떨어진 연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부모님은 모두 나나이모에 계시지, 내 친한 친구들은 전부 한국으로 돌아갔지, 학부 시절에는 관련 전공 네트워킹을 등한시 했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거라곤 GPA와 북경대, 런던정경대 석사 학위 뿐이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

 

나는 당시, 토론토와 오타와 등지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리서치도 해보고, 링크드인 가입도 해서 잡보드도 뒤적거리고 했는데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일자리는 나에게 코딩을 요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랭귀지는 영어, 한국어, 불어, 그리고 일본어와 중국어 조금인데 기업들은 모두 나에게 파이썬을 요구할 때의 그 비참함이란!!

 

내가 석사까지 하고 유학까지 하고 와서 코딩 부트캠프에 들어가 내 20대 절반 이상을 바친 국제관계학 전공과 상관없는 길로 들어서야 하는 것인가? (개발자 아무나 될 수 있다는거 절대 아님..)

 

실제로 내 동기 중에, LSE 나오고 케냐까지 날라가서 국제개발 프로젝트 여럿 참여하고 토론토 돌아온 친구는 지금 개발자로 전향해서 잘먹고 잘산다 ㅋㅋ

 

그런데 웃긴게, 내가 토론토에 돌아오니 내가 광고하지 않아도 한 명 씩 나에게 연락을 하는게 아닌가.

 

정말 신기한게, 학부 시절 막 친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내게 연락을 안하고(?) 나와 띄엄 띄엄 인연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내게 먼저 연락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취준 시기에 내게 많이 힘이 되어줬다.

 

2. 이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1. 현남친

 

내 남친과 나는 내가 학부생 시절, 서로 딱 한 번 만난 사이인데 남친은 내가 토론토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꼬시고자 연락했다.

 

아무튼, 남친은 내게 학력은 진짜 시장에서 별 의미가 없고, 실전 경험은 얼마든지 내 의지로 쌓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진지하게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남친의 지원으로 나는 취준생 시절 중국에서 목걸이를 떼다 아마존에 팔며 생계와 아마존 셀러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했다(?)

 

미국 아마존 사이트와 제품을 꼼꼼히 비교한 뒤, 중국 판매 공장들과 소통하고 몇몇 아이템들은 아마존's 픽에 내걸리기도 했다.

 

취준 기간 손만 놓고 있던 것이 아닌, 이력서에 한 줄 더 적을 수 있게 해주고, 또 모든 면접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아주 고마운 경력이다.

 

2. 아는 언니

 

내가 봉사활동 하러 간 곳에서 알게 되었는데, 나이차가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아주 잘 대해주었다. 언니에게 구직이 이렇게 힘든거냐 토로하자, 언니는 당신은 평생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써본 적이 없다 하셨다 ㅡ.,ㅡ 그래놓고 나에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가서 파티를 하고 니가 구직 중이라는 사실을 광고해라!!" 하셨다. 그 때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고 저걸 어떻게 실천할꼬 머리만 꽁공 싸맸지만, 이 언니가 레알 찐 네트워킹 고수였던 것이애오.

 

언니 말로는, 파티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많이 만나고, 내가 구직 중이라는 광고를 하고 다니면 그 중 나에게 인간적 호감이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분명 자신들의 친구, 가족, 친지에게 내가 구직 중이라는 사실을 퍼뜨려 뭔가 건질 수 있게 해줄거라는 것이었다.

 

이 언니를 통해, 아..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력서를 보내는건 오히려 잘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되었다. 실제로 이 언니 덕에 언니네 회사에 전화 면접까지 봤었다. 비록 fit이 맞지 않아 서로 갈 길 갔지만.

 

3. 대학 동기 1

 

얘는 내 학부 시절 동기로 나와 같이 대학원 코스를 받지 않고 로스쿨 직행. 퀸즈 법대 나와서 정부 부처에서 계약직으로 articling student 하던 앤데, 학부 시절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어떻게 연락이 되었다. 이 아이의 계약이 곧 끝나고 부서에서 정규직 전환을 해줄 계획이 없어서, 나와 같이 곧 잡마켓에 던져질 취준생의 운명에 놓인 미래의 변호사였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딱 한 시간씩만 수다를 떨고 헤어졌는데, 내가 괴로워하자 얘가 해준 말이 너무 충격이었다.

 

"나도 이 잡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근데 나랑 너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그래. 나는 정말 전화번호부 뒤져서 모든 로펌에 다짜고짜 자리 있냐고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나는 또 이 짓을 해야하고, 너도 그렇게 해야해."

 

이 때만 해도 그냥 대학원 졸업생과는 다르게 법대생들은 job security가 있는 줄 알았는데 (물론 상대적으로 더 그렇긴 하다), 얘가 모르는 변호사한테 마구 전화해서 구인 중이냐고 전화를 돌렸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존심은 또 얼마나 쎈 앤데.. 이게 바로 cold-call, cold-mail 전략으로, 얘가 나에게 처음으로 이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지금도 일 파트너도 잘 지내고 있음 (크리스마스 연휴에 Eataly에서 마주쳤다는 애가 바로 얘 ㅋㅋ)

 

4. 대학원 선배 1

 

2번 언니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비록 파티는 못나가는 성미일지언정 동창회는 나갈 수 있지! 해서 정말 자존심 다 접고 토론토 LSE 동창회에 나갔다. 거기서 이 선배를 만났는데, 빅토리아에서 이사온지 얼마 안됐다고 진짜 순수하게 나랑 놀고싶어(?) 했다. 취준 기간 동안 이 선배(?) 얘(? 한국인이 아니라서 선배라고 하는게 좀..)가 토론토 관광 다니고 싶어해서 따라 다녔다;;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는데, 내가 맨날 괴롭다고 징징대니 나를 뼈때려서 순살 만들어준 최초의 사람이다. "가 진짜 하고 싶은게 뭔데? 그 바닥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 것 맞고? 제대로 리서치는 하고 있어?"

 

솔직히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위의 1, 2, 3번 사람들은 모두 잘 될거야~ 곧 원하는 잡 찾을 수 있을거야~ 라고 토닥 토닥 말해주는 스타일이었고, 나도 좀 안이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3. 내게 용기를 준 사람

 

아마존에서 목걸이를 팔며, 근근이 들어오는 프리랜서 업무를 이어가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와중, 나는 앞서 말한 2, 3, 4번의 말들을 아로 새기고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이력서를 보내고 있었다. 서류 통과도 하고 대면 면접도 간간이 봤지만, 결국 모두 합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왜 합격 못했는지 이제는 너무 통감한다 ㅠㅠ)

 

이 때 진짜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이력서를 낸 곳이 있었는데, 도통 팔로업이 오지 않았다. 보통 이력서를 낸 후 연락이 안오면 2주 뒤 합격인지, 불합격인지의 여부를 알려달라는 이메일을 보내는데, 그마저 답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베이 스트리트 KPMG 빌딩에서 열리는 그 회사의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그 때 심정은, 감히 나를 떨어뜨리다니, 너네는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보자! 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또라이 같다.)

 

명찰을 위해 회사와 직함을 적으라는데, 빈 공간으로 놔뒀다. 우버 캐나다 총괄 매니져, 봄바디에/봉바르디에 부사장 등 쟁쟁한 사람들이 이름 밑에 회사와 직함이 적힌 명찰을 달고 네트워킹을 하는데, 일행도 없이, 아는 이도 없이 이름만 달랑 적힌 명찰을 꽂고 앉아있던 내가 얼마나 초라하던지.

 

니들이 프레젠테이션은 얼마나 잘하고, 이벤트는 얼마나 조직적으로 잘 준비했는지를 염탐하기 위해 갔던 자리였기 때문에 "흥, 그리 대단한 인간들도 아니구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치즈보드 위 간식을 외로이 주워먹고 있는데, 한 노신사분이 내게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청했다.

 

그 명함에는 내가 지원한 회사의 높으신 분이라고 써있었다.

 

 

나는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진짜 친구 대하듯 이 분과 수다를 떨었다.

 

나는 사실 이 회사에 지원했는데, 인사부에서 연락도 안오고 follow-up을 해도 내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도 답장이 안오고, 그 와중에 너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여길 왔다 ㅎㅎㅎㅎㅎ

 

글 써놓고 보니 그 때 내가 진짜 미쳤었나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 분은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내 백그라운드를 꼬치 꼬치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나는 이러 이러한 학교에서 이러 이러한 공부를 했고, 내가 끝내주게 너네 회사 신입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그 분이 물어보셨다.

 

"너 자리 말고도, 같은 기간에 우리 프론트 데스크 리셉셔니스트도 뽑았어. 그런데 몇 명이 지원했는 줄 아니? 자그마치 300명이란다. 하물며 프론트 데스크도 지원자가 이렇게 몰리는데, 네가 지원한 자리는 몇 명이 지원했을 것 같니?"

 

덧붙혀, 이렇게 말해주셨다.

 

"지금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는 stellar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네 이력서는 확인되지도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거야. 대부분이 그래. 너, 링크드인 1촌이 몇 명이나 되니?"

 

"100명.. 정도요?"

 

그러자 이마를 아이쿠 탁! 치시며, 내게 10배, 100배 더 많은 1촌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본격적인 "링크드인 네트워킹"을 하라 하셨다.

 

덤으로, 네 이력서가 "저"사람에게 갔다며, 채용 진행 여부를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또라이 같게도 담당자에게 찾아가서, 나는 누구 누구인데 이번 신입에 지원하고 팔로업도 요청했는데 답장받지 못했다. 어떻게 되고 있느냐? 라고 물었고, 그 사람은 당황하며 이미 두 명의 아주 능력 뛰어난 후보자들을 추려냈고, 다음 주 최종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합격된 사람은 옥스포드 대학원 졸업생이었음.. ㅇㅈㅇㅈ.. ㅋㅋ)

 

예상대로 긍정적인 답은 얻지 못했지만, 터닝 포인트가 된 하루였다.

 

이 날, 나는:

1. 내가 못나서 취직이 안되는게 아니라 시스템상 걸러졌을 확율이 높을 수 있고,

2. "네트워킹"이란 #2번 언니가 말해준 파티에 나가는 것만이 아닌, "링크드인"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할 수 있으며,

3. 이것은 #3번 대학 동기가 말한 콜드콜, 콜드 메일 전략과 일맥상통 한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판을 새로 짜야했다.

 

이제는 이력서 작성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내가 진짜 이 악물고 네트워킹해서 나 자신을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구나. 이 일이 있기 전, 내 마음 한켠에는 학교 대충 좋은데 나왔으니 어찌 어찌 모셔가(?) 주겠지~~ 하는 어리석고 오만 방자한 생각이 깔려있던게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너무 부끄럽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게 말을 걸어주신 그 노신사 분은 실제로 신규 이민자들을 위한 네트워킹 이벤트를 사비로, 코시국 전에는 노스욕 센터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주최하시는 분이셨다. 나중에 취직하고 인사드릴겸 그 이벤트 참석함;;;

 

누가 읽을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렇게 글로 써내려가며 그 때 일을 회상하니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싶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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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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