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일: 6월 18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틀만에 다시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땐 피곤하고 무기력해 죽겠거니와 숙소도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차때문에 전날 밤 11시에 도착하고 이모와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두세시에 잤는데 시차 때문에 어그적어그적 오전 7시정도에 기어나와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대충 Booking.com에서 아무 호스텔이나 골라잡았다. 사진도 깨끗해보이고 위치상 다운타운 중심부라 관광에 용이할 것 같아서...

 

떠나기 전날 홍콩에서 홍콩대를 다니며 지병으로 홧병을 얻은 (분노조절장애 ㅋㅋㅋㅋㅋ) 소꿉친구 K군을 서현역에서 만났는데 걔가 하는 말이 란콰이펑에는 꼭 가라더라. 나는 나름대로 이곳저곳 지명이나 관광소를 리서치 해서 걔한테 보여줬는데 내가 준비해간 노트를 고이 접고 걍 서점에서 책 한권 사라던 K군 ㅡㅡ 너 이자식 근데 란콰이펑 클럽명소더라........ 나 술 안마시고 클럽 안가는거 알자나 이시끼 ㅠㅠ

 

홍콩으로 떠나는 날에는 지가 엄청 주룩주룩 내리고 습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수지에서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도 이제는 지겹다 gg

 

홍콩/대만 여행은 일주일 예정이었고, 홍콩에는 초등학교를 같이 나와서 대학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가 당시 홍콩대에 교환학생으로 가있었다. 마침 대만에는 하이스쿨을 함께 나오고 대학에 같이 진학한 친한 대만인 친구가 들어가있는 상태였고.

 

하지만 홍콩대 교환학생 친구는 오전/낮에는 학교에 가야했기 때문에 부통 밤에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고 대만친구는 아버지의 동물병원을 도와주느라 내가 대만에 있는 동안 내내 나를 데리고 다닐 짬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아~ 난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홍콩은 공항에서부터 엄청 습하고 더웠다. 크고 깨끗했던 공항이었지만 기대보다는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날씨는 무지 좋은 듯 했다.

 

Luggage pick up 라운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 짐이 나오지 않는다. 아 제길... 영국에서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건가;; 그리스에서 짐 도둑맞은걸로 충분하지 않은건가;; 이번에는 여행 시작하기도 전에 뭐야 이거 했는데 다행히 엄청 늦게 delay되서 내 짐이 나왔다.

 

덕분에 체크인 후 저녁식사를 하고 야시장을 함께 가자던 친구와의 약속이 늦어졌다.

 

Octopus 교통패스를 사고 홍콩의 다운타운으로 운행하는 공항버스를 탔다. 영연방 출신답게 붉은색 2층버스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내 앞자리에는 단발컷이 인상깊은 아저씨가 앉았는데 머리를 도대체 얼마나 감지 않은건지 기름과 비듬에 쩔어서 찰랑찰랑 하다못해 머리가 치덕치덕거렸다.

홍콩/대만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보통 한국인은 깨끗한 것이 정상이고 씻지 않으면 그게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데, 중국인들은 반대인 듯 했다. 씻지 않는게 평범한건데 씻으면 단지 "깨끗"할 뿐인거... 한마디로 홍콩/대만에도 위생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게 비정상으로 치부되지는 않는 듯 했다. 다니면서 왜 K군이 홧병에 걸렸는지 이해가 가더라는...

 

아무튼 도착하자마자 카톡으로 교환학생으로 가있는 친구가 하는 말 "전날만 해도 비 엄청 왔었어! 장마철인가 할 정도로 2주동안 비만 내렸는데 왠일이니 신기하다!"

 

ㅋㅋ I guess HK welcomes me

 

 

창가로 부는 바람의 기분이 좋았다. 노을이 지기 직전 오후의 햇볕이라 그런지 햇빛이 황금빛이었다. 지금 홍콩에 도착했구나 내가~

 

40분정도 걸려서 숙소가 위치해있다는 Nathan Road의 침사추이역 근방에 다다랐다. 이곳저곳 때묻은 고층 빌딩들과 빼곡한 한자들, 가게 간판들, 자동차들 그리고 인산인해...

 

전날 구입한 홍콩여행책자를 뒤적거려보았는데 (그래 나 리서치 하나도 안하고갔다 정말 하.나.도 ㅋㅋ) 거기 써있기를

 

청킹맨션: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찾을법도 하지만 중경삼림 등 여러 액션/조폭영화의 배경이 된 곳으로 마약밀거래나 불법노동자들이 판을치는 곳이다. 남자들도 조심할 것. 비추.

 

라고 써있었다.

 

잠깐...

 

아까 내가 확인했던 내 숙소 주소가 뭐였지?

 

ㅡㅡ

 

청킹맨션...

 

 

"청킹맨션이 어디있죠?"

 

버스에서 내려서 아무나 붙잡고 물으니 내 옆에 있는 건물을 가리킨다. 청킹맨션이라고 써져있다.

 

Shit...

 

 

침사추이역에서 Nathan Road를 따라 Front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분명 대부분 홍콩/중국인 및 관광객들이 대부분인데 한두블럭 정도 중동/인도/흑인 삐끼들이 엄청 많은 곳이 나온다. 관광객들을 붙잡고 호텔 예약했어~? 하면서 잡아 이끄는데 내가 예약한 숙소, 청킹맨션이 바로 그들의 상권에 속해있었다. 화려한 고층 빌딩들 중간에 떡하니 자리잡은 조금있으면 쓰러질 것 같은 엄청나게 떄 탄 이 건물... 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자 어두컴컴한 백열등이 비추는 이 건물입구가 꼭 할렘가 같았다.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계단에는 삐끼들이 서서 내 팔을 이끌었다. "아가씨 방 잡았어?"

 

세상에나;;; 가뜩이나 핫팬츠 차림에 20대 초반 여자가 두리번 두리번 어리버리하게 캐리어 하나 이끌고 계단에 올라서니 남자들이 개떼처럼 달려든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진짜 대박 불안하다.

 

안은 옛날 한국의 지하상가처럼 생겼는데 전자, 인도음식, 싸구려 물건등을 취급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청킹맨션이 홍콩에서 환율 값을 가장 잘 쳐준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내가 홍콩을 떠나는 날에 청킹맨션 환율소는 나에게 빅엿을 주었다).

 

 

 

혼자 조폭같이 서있는 청킹맨션.

 

내가 예약한 호텔은 7층의 Tokyo Hotel이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서면 카운터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체크인을 하고 키를 받는다.

 

카운터에는 왠 인도인이 앉아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저기... 여기 안전은 한가요?"

 

"Of course. No worries."

 

심드렁하게 말하는 카운터...

 

믿기 힘들거든? ㅡㅡ

 

아오;; 열쇠를 따고 복도에 들어서니 이게 왠 여관분위기...

 

방은 정말 3평 남짓하리만큼 코딱지만한 방이었고 사진과는 매우 달랐다. 사기다. 내가 반올림해서 165cm에 그 당시 몸무게가 49kg였는데 혼자 몸을 못가눌 정도이고 화장실은 문을 닫지 못한다.

 

K군에게 "내 숙소 청킹맨션이라는덴데;; 뭐야?"

 

했더니 "미쳤냐?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당장 나와" 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

 

찜찜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밖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에서 한국인 accent가 있는 키작은 50대 아저씨를 만났다. 낯선 땅에서 한국인이 반갑기도 하고 이 그지같은 숙소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경에 "혹시 한국인이세요?" 물으니 그렇단다.

 

사업차 홍콩에 장기간 묵는 사업가라고 하는데 자기는 청킹맨션을 아주 잘 안다면서, 젊은 아가씨가 왜 혼자 이런 곳으로 왔냐고,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7층 도쿄호텔? 걔들 질 안좋은데..."

 

"저 정말 불안해서 그러는데 혹시 모르니까 긴급사항이 생기면 전화드려도 될까요?" 하니 언제든지 그러라면서 번호를 알려준다.

 

"이따 몇시쯤에 들어올거에요?"

 

"글쎄요, 친구들이랑 야시장 돌고 하면 한 열두시 한시 쯤 되지 않을까요?"

 

"그럼 나 저기 저 xxx 숙소에 묵고 있으니까 두시가 됐든 세시가 됐든 아무리 늦어도 좋으니까 내 방에 들러요. 여자 혼자 위험하게..."

 

서너번 계속 강조하면서 꼭, 꼭 오늘 밤 자기 방에 들르라는 이 아저씨... 순간 뭐지 이거? 싶었지만 표정이나 말투자체가 너무 나를 걱정하고 위해주는 말투라 그냥 번호만 받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불쾌하고 혼란스러웠다. 개새끼였고 생각할 수록 더 개새끼다.

 

그리고 그날 나를 숙소로 데려다 준 친구는 울었다. 제발 나오라면서...

 

앞으로 나는 홍콩에서의 나흘간 삶에 위협을 느끼며 아침해가 밝자마자 숙소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기를 매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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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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