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연세대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덕분에 덩달아 계획한 홍콩/대만/태국여행 그리고 7년만의 한국방문은 나에게 삶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고, 나 자신을 더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몬트리올, 쿠바, 그리고 1년 반 이상을 미루고 미루던 터키/그리스 여행기까지 일단은! 다 마쳤기에 쓸 수 있는 2013년 홍콩/대만 여행기.


2013년 봄, 심신이 갈기갈기 망신창이가 되어서 역시나... 충동적으로 계획한 여행이다 (지금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곰곰히 정리해보니 나는 정말 충동적인 짓을 많이하는 것 같다. 반성해야지 ㅋㅋㅋㅋㅋㅋ)


"엄마, 나 이번에 홍콩이랑 대만 가."


5월 어느 초여름날 토론토,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엄마에게 그렇게 통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갈 것입니다.


예상외로 엄마는 쿨하게 허락해주셨고 이번 여행을 계기로 엄마는 내가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것에 일절 터치하지 않으시게 된다. 솔직히 좀 많이 섭섭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생활을 하는 아이라고 소문이 자자할 만큼 학교에서 공부, 대외활동, 노는 것, 모두 열심히였던 나는 그냥 아무데나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다. 홍콩/대만을 다음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단지 "안가본 곳"이어서다. 다른 동남아 나라들은 왠만하면 다 가본데다가, 특히 홍콩은 교환학생으로 꼭 가보고싶었던 곳이었기에 그냥 집어넣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2013년 홍콩/대만 여행은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계획도 없는 여행이었다. 비행기표만 덜컥 끊어놓고서는 떠나기 전날까지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홍콩대를 졸업한 10년지기 친구를 서현역에서 만났는데, 그 아이도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그냥 책자 하나 사라면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은 K군 넌 나를 청킹맨션으로 던져넣었어...


음... 그래 나는 여자 홀몸으로 청킹맨션에서 며칠간 지냈다. 내가 홍콩/대만여행에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를 아주 잘 설명하는 예 중 하나이다. 홍콩 일대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청킹맨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곳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 ㅋㅋㅋㅋㅋ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고, 혼자 조사도 없이 싸돌아다니고, 즉흥적으로 숙소를 정하고,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 당할 뻔 하고, 하여튼 우여곡절 사건사고가 많은 여행이었다. 될테면 되라지~ 세상 뭐 별거있나 여기서 죽으면 죽는거지, 하면서 정말 겁도 없이 싸돌아다닌 무식한 여행이었는데, 이 나이에 나 아니면 언제 또 해볼 경험인가 싶기도 해서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음만 나온다.


생각정리를 하고싶어서 갔다. 근데 생각이 안났다. 혼자 거리를 걷는데 머리가 그냥 텅텅 비어있는 느낌인 듯 했다. 뭔가 자아를 더 깊숙히 이해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서 결정한 여행이었는데 돈낭비, 시간낭비를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걸었던 조용한 홍콩의 아침거리가, 대만의 북적북적한 사람냄새가, 그리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었던 나만의 일주일이 결과적으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아주 조금은 얻게 해 준것 같아서 감사한 여행이었다.


산속에 올라갔는데 비는 주구장창 오고, 아무하고도 연락은 되지 않고, 나 혼자 구름 속 산장에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뭘하는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홍콩/대만 여행은 그걸 깨닫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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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캐서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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